<올해의 谷城인물상> 자랑스런 곡성인상 수상 조윤기 재경곡성군향우회 명예회장 “고향이 있어 행복하고 심청골이 자랑스러워요” 곡성일보 ok-krs@hanmail.net |
2018년 06월 01일(금) 20: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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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기(69) 재경곡성군향우회 명예회장은 곡성군 목사동면 평리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곡성군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교통편이 열악했던 골짝마을에서 일찍이 혼자가 되신 어머니와 함께 생활해왔던 조 회장은 생계유지에 급급하다보니 14세 때 목사동 평호초등학교만 졸업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를 마친 뒤 나이는 어렸지만 400여 평의 자갈땅을 옥토로 만들어 농사를 짓기도 하고 그저 먹고사는 일로 시골에서 묻혀 살 수밖에 없었다. 이같은 환경속에서도 조 회장은 학교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성적이 좋아 졸업식때 전라남도지사상을 받는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중학교 진학의 꿈은 접어야 했다. 은사님의 권유와 도움으로 중․고교 검정고시 준비를 시작했지만 그마저 여의치 않아 도중에 중단하는 아픔을 겪었다.
결국 모든 걸 포기하고 산에서 땔나무를 하고 농사일도 도우며 살아가던 중 16세 때 “더이상 이렇게 살아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상경을 결심했다. 무작정 시작한 서울생활이 녹록치 않았지만 공장 생활과 장사 등 돈이 될만한 일을 닥치는데로 찾아 소화해냈다. 공부할 기회도 놓친데다 그렇다고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기반도 없던 처지인지라 5년여 동안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길을 걸어야만 했다.
그러다 어느새 성년을 넘긴 21세 때 조 회장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에 땅을 구입하고 철공소를 차리면서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 무렵 그동안 피땀 흘려 벌어 온 돈을 밑천삼아 철공소와 연관된 건축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뜻밖에 좋은 결과들이 이어졌다. 조 회장에게 새로운 미래가 열린 것이다. 옛말로 집장사로 대박이 났는데 건축사업을 했던 10여 년간이 그야말로 최대 전성기였다. 이때가 80년대였는데 조 회장의 나이 30대 초반이었다. 어느정도 경제기반이 잡히자 장안동 사업체를 손위 형님에게 맡기고 사업 둥지를 송파구로 옮겼다. 불모지인 이곳에서 새로운 건설을 개척했는데 이때도 잇따라 성공가도를 달리면서 40대에 이미 사업을 반석위에 올려놨다.
그러나 조 회장에겐 가슴 한 구석에 늘 허전함과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바로 공부를 못한 것 때문이다. 그래서 사업이 아무리 바빠도 반드시 못다한 공부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어릴적 한번 포기했던 중․고 검정고시를 시작해 3년만에 대입자격을 취득한 뒤 1994년 방송통신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도중에 경영학과에서 중어중문학과로 학과를 바꿔 재입학한 뒤 주경야독 끝에 57세 나이로 눈물어린 대학 졸업장을 받게 됐다.
조 회장의 반짝이는 인생의 빛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40년 째 동명건설을 경영하면서 늘 주변 사람들을 살피는 일에 소홀히 하지 않았고, 30여 년간 사회봉사활동을 몸소 실천해왔다. 지금의 생활기반이 된 서울시 송파구에서 행정, 사회단체, 주민자치 등 수많은 부문에서 남다른 열정으로 봉사에 앞장서왔다. 송파구 자치연합회장을 비롯 송파구자유총연맹 협의회장 그리고 민주평통자문위원까지 모든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조 회장의 이같은 활동이 널리 알려지면서 2016년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62주년 기념식에서 자유민주주의체제 수호와 통일기반 조성 등 지회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에앞서 1989년 서울시장 표창과 2011년 경찰청장 표창을 비롯 수많은 상장과 표창장을 받는 등 사회현장 곳곳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며 50년 이상 생활해 온 수도권에서 곡성인의 자긍심을 키워가는데 그 누구보다 혼신의 노력을 쏟아왔다.
지난 2012년부터 2년간 재경곡성군향우회장을 비롯 수도권에서 십수년 동안 군과 면단위 향우회 임원으로 왕성하게 활동한 덕분에 지금도 여전히 향우들 사이에 귀감이 되고 있다. 자녀들도 훌륭하게 성장시켜 첫째딸은 대기업 맞벌이 부부, 둘째딸도 맞벌이 중등교사 부부, 셋째 아들은 현재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활동을 준비중이다.
고향만큼 푸근함을 느끼고 행복한 곳이 없다는 조 회장은 “저보다 훌륭한 향우와 군민들이 많은데 곡성일보가 선정한 ‘올해의 곡성인상’을 받게 돼 송구스럽지만 고향 발전에 더 헌신해 달라는 주문으로 생각하겠다”면서 “사랑하는 고향이 있어 행복한 만큼 곡성인의 긍지를 높여가는데 더욱 노력하며 살아가겠다”고 전했다. /김래성 기자
◆조윤기 명예회장 약력◆
-목사동면 평호초등학교 졸업
-중․고 검정고시 졸업
-방송통신대 중어중문학과 졸업
-前 평호초등학교 총동문회장(4년)
-前 재경목사동면 향우회장(4년)
-前 재경곡성군향우회 부회장(8년)
-前 재경곡성군향우회장(2년)
-前 송파구 오금동주민자치위원장
-前 송파구 자유총연맹 협의회장
-(현)송파구 민주평통자문위원
-(현)재경곡성군향우회 명예회장
-(현)동명건설 대표
곡성군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교통편이 열악했던 골짝마을에서 일찍이 혼자가 되신 어머니와 함께 생활해왔던 조 회장은 생계유지에 급급하다보니 14세 때 목사동 평호초등학교만 졸업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를 마친 뒤 나이는 어렸지만 400여 평의 자갈땅을 옥토로 만들어 농사를 짓기도 하고 그저 먹고사는 일로 시골에서 묻혀 살 수밖에 없었다. 이같은 환경속에서도 조 회장은 학교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성적이 좋아 졸업식때 전라남도지사상을 받는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중학교 진학의 꿈은 접어야 했다. 은사님의 권유와 도움으로 중․고교 검정고시 준비를 시작했지만 그마저 여의치 않아 도중에 중단하는 아픔을 겪었다.
결국 모든 걸 포기하고 산에서 땔나무를 하고 농사일도 도우며 살아가던 중 16세 때 “더이상 이렇게 살아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상경을 결심했다. 무작정 시작한 서울생활이 녹록치 않았지만 공장 생활과 장사 등 돈이 될만한 일을 닥치는데로 찾아 소화해냈다. 공부할 기회도 놓친데다 그렇다고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기반도 없던 처지인지라 5년여 동안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길을 걸어야만 했다.
그러다 어느새 성년을 넘긴 21세 때 조 회장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에 땅을 구입하고 철공소를 차리면서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 무렵 그동안 피땀 흘려 벌어 온 돈을 밑천삼아 철공소와 연관된 건축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뜻밖에 좋은 결과들이 이어졌다. 조 회장에게 새로운 미래가 열린 것이다. 옛말로 집장사로 대박이 났는데 건축사업을 했던 10여 년간이 그야말로 최대 전성기였다. 이때가 80년대였는데 조 회장의 나이 30대 초반이었다. 어느정도 경제기반이 잡히자 장안동 사업체를 손위 형님에게 맡기고 사업 둥지를 송파구로 옮겼다. 불모지인 이곳에서 새로운 건설을 개척했는데 이때도 잇따라 성공가도를 달리면서 40대에 이미 사업을 반석위에 올려놨다.
그러나 조 회장에겐 가슴 한 구석에 늘 허전함과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바로 공부를 못한 것 때문이다. 그래서 사업이 아무리 바빠도 반드시 못다한 공부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어릴적 한번 포기했던 중․고 검정고시를 시작해 3년만에 대입자격을 취득한 뒤 1994년 방송통신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도중에 경영학과에서 중어중문학과로 학과를 바꿔 재입학한 뒤 주경야독 끝에 57세 나이로 눈물어린 대학 졸업장을 받게 됐다.
조 회장의 반짝이는 인생의 빛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40년 째 동명건설을 경영하면서 늘 주변 사람들을 살피는 일에 소홀히 하지 않았고, 30여 년간 사회봉사활동을 몸소 실천해왔다. 지금의 생활기반이 된 서울시 송파구에서 행정, 사회단체, 주민자치 등 수많은 부문에서 남다른 열정으로 봉사에 앞장서왔다. 송파구 자치연합회장을 비롯 송파구자유총연맹 협의회장 그리고 민주평통자문위원까지 모든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조 회장의 이같은 활동이 널리 알려지면서 2016년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62주년 기념식에서 자유민주주의체제 수호와 통일기반 조성 등 지회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에앞서 1989년 서울시장 표창과 2011년 경찰청장 표창을 비롯 수많은 상장과 표창장을 받는 등 사회현장 곳곳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며 50년 이상 생활해 온 수도권에서 곡성인의 자긍심을 키워가는데 그 누구보다 혼신의 노력을 쏟아왔다.
지난 2012년부터 2년간 재경곡성군향우회장을 비롯 수도권에서 십수년 동안 군과 면단위 향우회 임원으로 왕성하게 활동한 덕분에 지금도 여전히 향우들 사이에 귀감이 되고 있다. 자녀들도 훌륭하게 성장시켜 첫째딸은 대기업 맞벌이 부부, 둘째딸도 맞벌이 중등교사 부부, 셋째 아들은 현재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활동을 준비중이다.
고향만큼 푸근함을 느끼고 행복한 곳이 없다는 조 회장은 “저보다 훌륭한 향우와 군민들이 많은데 곡성일보가 선정한 ‘올해의 곡성인상’을 받게 돼 송구스럽지만 고향 발전에 더 헌신해 달라는 주문으로 생각하겠다”면서 “사랑하는 고향이 있어 행복한 만큼 곡성인의 긍지를 높여가는데 더욱 노력하며 살아가겠다”고 전했다. /김래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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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기 명예회장 약력◆
-목사동면 평호초등학교 졸업
-중․고 검정고시 졸업
-방송통신대 중어중문학과 졸업
-前 평호초등학교 총동문회장(4년)
-前 재경목사동면 향우회장(4년)
-前 재경곡성군향우회 부회장(8년)
-前 재경곡성군향우회장(2년)
-前 송파구 오금동주민자치위원장
-前 송파구 자유총연맹 협의회장
-(현)송파구 민주평통자문위원
-(현)재경곡성군향우회 명예회장
-(현)동명건설 대표
곡성일보 ok-kr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