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에서는 수천 년 전부터 농사를 지어왔다. 그러나 농사에서 화학비료와 농약이 사용되기는 불과 수십 년 전부터였고 그 이전에는 유기농업을 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 자연에 순응하며 수천 년을 이어져 내려오면서도 아무 이상이 없었던 농사가 화학비료와 농약이 나온 지 불과 수십 년 만에 자연이 훼손되고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최근에 대두된 친환경농업은 바로 예전의 농사로 다시 회귀함을 의미한다.농사에 화학비료나 농약이 사용되면서 농작물마다 재래종대신 도입종이나 개량종이 급속히 늘었다. 주된 이유는 개량종의 수확량이 재래종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개량종들은 주로 인간이 이용하는 부위만 비정상적으로 많이 생산되도록 개량되었다. 상추를 예로 들어보자. 상추는 저온 채소인지라 봄에 잎이 자라다가 기온이 높고 해가 길어지면 꽃대가 나와 열매가 맺히는 것이 본래의 특성이다. 그러나 개량종들은 여름이 되어도 꽃대가 올라오지 않고 잎이 계속 자란다. 수확량이 많도록 인위적으로 개량한 까닭이다. 최근에는 농작물의 유전자를 조작할 정도에 이르렀으니 이와 같은 농작물들은 고유의 특성과 자연의 순리가 무시된 비정상적인 식물이라 해야 옳다.
인간의 욕심대로 개량했다하여 비정상적인 식물로 치부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품종들은 주로 품질이나 수확량에 중점을 두고 개량되었으므로 병해충이나 잡초 등에 적응력이 약하여 재배하려면 농약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이다. 유기농업을 시도하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흔한데 대개 품종선택을 잘 못했기 때문이다.
병해충 방제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애당초 강한 품종을 심는 것이다. 유기농업은 농약이나 비료를 전혀 쓰지 않고 농작물을 재배해야 하기 때문에 병해충에 강한 품종을 심어야 한다. 그런데 수확량만을 감안하여 기존의 개량종을 심었으니 성공을 거둘 리가 없다.
재래종들은 그동안 농약이나 비료 없이도 꾸준히 생명력을 유지해왔다. 따라서 수확량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우리 입맛에 맞을 뿐 아니라 병해충이나 잡초 등에 견디는 자연적응력이 매우 강하다. 산에 자생하는 식물들이 비료나 농약을 주지 않아도 병해충 피해 없이 잘 자라듯이 재래종도 같은 이치다. 만약 자생식물이나 재래종들이 자연적응력에 약했다면 이미 이 땅에서 사라졌으리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상수 중에 라일락의 한 종류인 ‘미스김라일락’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이름에 ‘미스김’이 들어가 있는 이유를 궁금해 한다. 거기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숨어있다.
라일락은 용담목 물푸레나무과의 낙엽관목으로 구미에서는 중요한 관상수로 여긴다. ‘미스김라일락’은 원래 우리나라 중부지방에 자생하는 정향나무였다. 정향나무도 라일락과 같은 용담목 물푸레나무과의 낙엽관목으로 오월에 적자색이나 보라색의 꽃이 핀다.
정향나무가 ‘미스김라일락’이 된 사연을 알려면 해방 직후로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당시 미 군정청 소속의 한 식물 채집가가 우리나라의 북한산 기슭에서 아름다운 정향나무를 발견하고 종자를 채집하였다고 한다.
그 채집가가 미국으로 가져간 종자를 심어 오늘날의 ‘미스김라일락’을 탄생시켰으며 그 이름에 ‘미스김’을 붙인 것은 그가 한국에서 생활할 때 같이 일했던 여성의 호칭을 딴 것이란다. 그 사연을 듣자면 마치 우리 것을 도둑맞은 심정으로 억울하기까지 하지만 우리의 자생식물을 관리하고 보존해야 하는 이유를 잘 말해준다.
친환경농업이 늘어나면서 자연에 순응하며 이어져 내려온 재래종들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예전에는 흔히 볼 수 있었던 재래종 고추나 오이, 상추, 밀 등 품종들이 갈수록 사라지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동물도 예외는 아니어서 언젠가 한우와 덩치가 큰 외국소의 교잡종을 생산하여 기른 적이 있다. 고기를 많이 생산하기 위해서였다지만 어리석은 짓이었다. 요즘은 한우와 토종닭이 많이 길러지고 있어 다행이지만 우리의 토종인 삽살개는 멸종위기라 한다. 우리의 귀중한 자원이기도 한 자생식물이나 재래종 농작물과 가축들을 아끼고 보존하는 노력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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