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남식 곡성 부군수 , 배려의 상징 ‘까치밥’
곡성일보 ok-krs@hanmail.net
2018년 06월 02일(토) 17:51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이 지났다. 각양각색으로 산과 들을 꾸미던 나뭇잎이 낙엽으로 떨어지자 시골 밭 어귀에는 노오란 감이 계절의 넉넉함을 채워주고 있다. 농부의 감 수확은 인정과 사랑 그리고 배려의 마음 표시인 ‘까치밥’으로 끝맺음을 한다. ‘까치밥’은 겨울철 먹이가 부족하면 새들의 굶주림이 걱정된 농부들의 마음의 배려였던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이 시대는 어떠한가? 숨 쉴 여유조차 없는 지경이다. 별별 수단을 다 동원해 나만 아니면 된다는 극단적 이기주의가 만연해 있다. 이기주의를 표현하는 말로 내로남불(내가하면 로맨스요 남이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있다. 이기주의는 사회의 다른 사람에 대하여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이나 행복만을 고집하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며칠 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총상을 입고 귀순한 북한병사를 치료한 아주대 중증외상센터가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권역별로 ‘권역외상센터’가 있어 심각한 외상을 입은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 하루에도 여러 차례 헬기가 병원 옥상에 뜨고 내린다. 이런 환자들의 대부분은 ‘골든타임’이 중요하다. 몇 분의 시간이 목숨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음으로 몰수도 있다. 그런데 병원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헬기소음 때문에 골치라고 민원을 제기한다. 이러한 민원에 시달리는 자치단체에서는 헬기장 이전, 헬기 대기 시 프로펠러 가동중지 요청까지 했다고 한다. 생사의 갈림길에선 사람의 목숨이 내가 아니기 때문에 상관없다는 이기주의의 표본인 것이다.
“119 구급차 사이렌 소음 줄여주세요”
주민들로부터 구급차량 사이렌 작동소음에 대한 민원이 끊이지 않고 온라인망을 통해 올라온다. 119소방안전복지사업단에 제기된 사례를 보면 경찰이 지역주민들의 민원을 받고 인근 대학병원에 구급차 사이렌소리를 줄여달라고 요청까지 했다고 한다. 어떠한 이유로도 사람의 생명은 보호되어야 한다. 세상에는 고마운 소리가 많다. 아기 울음소리, 생명을 살리는 닥터 헬기소리와 구급차 사이렌 소리, 이것은 소음이 아니라 천사의 소리인 것이다. 일부 시민들의 이기주의로 구급대원들의 마음이 멍들고 있어야 하겠는가.
농촌에도 배려는 찾아보기 어려워져 가고 있다. 축사 악취문제, 쓰레기매립장, 하수종말처리장 등 주민간의 갈등은 날마다 생겨나고 있지만 해결은 그리 쉽지 않다. 자기 생각만 옳고 다른 사람의 의견은 틀리며 존중되어지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은 찾아볼 수 없다.
우리나라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다보니 과정이 필요없는 결과지상주의, 성공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 등의 이기주의가 만연되어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잔혹한 범죄 사건들이 터지고 별별 수단이 동원돼 개인의 이익을 채우기에 급급한 사회가 되었다. 배려라고는 눈 씻고 봐도 찾아볼 수가 없다. ‘까치밥’에서 배려를 배워야 하는 이유이겠다.
11月 어느 날 아파트 앞 횡단보도에서 할머니 한 분이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신호대기 중이던 운전자들이 일제히 나와 할머니를 부축했다. 충남 홍성읍에서 일어난 일이다. 개인이기주의가 만연한 각박한 세상에 아직까지는 인심이 살아있는 훈훈한 모습이겠다. 예로부터 우리민족은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칭호를 들어왔다. 지금도 그런 칭호를 들을 수 있을까 의문이다. 인간으로서의 기본 도리가 ‘예’이지 않겠는가? 자기중심의 이기주의가 ‘예’로 둔갑한지 오래다. 제 욕심대로 안 되면 단체를 구성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투쟁하여 욕심을 채우는 일이 부지기수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평안히 잘 살기 위해서 이기주의를 나부터 스스로 버려야 하겠다. 조금은 불편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양보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까치밥에서 배워보는 여유를 가져야 하겠다. 이런 마음의 배려가 또 다른 이에게 전해져 배려하고 양보한다면 살맛나는 향기로운 세상이 오지 않을까?
한국전쟁 후 배고픔이 만연한 시대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가족, 이웃 간의 정 때문이었다. 그런 시대를 살아 넘겨온 이유에서일까. 이제는 굶주린 사람도 줄었고 각종 복지정책으로 평균수명도 길어졌다. 하지만 옛날과는 달리 이기주의가 만연해지고 있다. 배고팠지만 인정과 배려가 넘쳤던 시절이 되살아났으면 좋겠다. 연말이 다가온다. 거리에는 사랑의 온도탑이 등장했다. 아름다운 가을 텃밭 모퉁이에 까치밥 몇 개를 남겨 놓은 우리 전통의 미학을 생각해 보면서 배려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아름다운 인간미 넘치는 세상을 꿈꾸어 보는 것도 좋은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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