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끝자락에서 바라본 곡성의 들녘, 수확이 끝난 넉넉함으로 평온하다.
여름 내내 땀 흘려 키웠던 벼는 추곡수매장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고 방앗간에서 찧은 햅쌀도 객지 자식들에게 택배로 보냈다.
기계화가 안된 밭농사는 점점 힘이 부치지만 가을이면 자식들에게 보낼 욕심에 콩, 팥, 고구마, 들깨도 늦지 않게 거둬서 들깨가루와 참기름, 들기름, 고춧가루까지 골고루 담아 보낸다.
그 다음은 김장이다. 배추를 뽑아 다듬어서 절이고 깨끗이 씻은 다음 하룻밤 재워 물기를 빼고 각종 양념을 버물려 김치를 담근다. 자식들과 형제 자매 몫까지 챙기느라 가득 채워진 김치통은 끝이 없이 늘어서 있다.
그러나 김장날은 동네 잔치날로 즐겁다. 집집마다 돌아가며 김치맛을 보고 수육과 막걸리로 지난 1년간의 노고를 함께 위로하기 때문이다.
이제 곧 한 해가 가고 새해를 맞이해야 하는 12월, 농촌에서 가장 편안한 시간이다.
마을회관에 모여 함께 먹는 김장 김치는 지난 날들을 돌아보게 하는 원동력이다.
배추를 먼저 절이고 나서 씻은 요즘과 달리 고무장갑도 없고 소금이 귀했던 옛날에는 배추를 먼저 씻고 절이느라 맨손이 꽁꽁 얼었다. 김장철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무용담이다.
거기에 요즘 사람들은 절임배추를 사서 한다고들 하지만 직접 절인 배추로 김장을 해야 맛이 좋다는 결론으로 의견이 일치된다. 한번 시작된 추억담은 끝이 없다.
요즘 소나무 아래 수북히 쌓여있는 가리나무(소나무 낙엽)를 보면 나무를 하고 싶다. 어릴 때는 나무하는 사람이 많아서 망태를 채우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소나무 아래 가리나무를 보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시대를 지내왔던 사람들의 추억은 모두 공유된다.
12월 22일은 24절기중 22번째라는 동짓날이다. 동지죽에 들어갈 새알심을 빚으며 새알심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다가오는 새해 모든 날들이 동지죽처럼 달콤하고 따뜻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