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생활을 뒤로하고 정년퇴직을 했다. 온라인 인증 시 요구한 직업란이 공란이라는 당혹감으로 낯설음을 느낄때가 많았지만 새해가 되면서 새로운 날이 시작 되었다.

36여년 동안 이른 아침, 늦은 저녁, 앞만 보고 곡성을 향했던 길을 이제 대낮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볕을 감상하며 느긋하게 가다 보면 수십년간 지내왔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운전중 해내고 싶었던 일들을 골똘히 생각하다 본의 아니게 접촉 사고를 내기도 했다.

힘든 일이 계속될 때는 가고 싶지 안했던 길, 태풍·폭우·폭설로 피해 입은 논밭을 보며 가슴 아팠던 일, 오랫동안 공들였던 일들이 성과로 나타나 큰 기쁨을 주었던 일들, 수많은 일들이 그 길속에 무수히 녹아 있다.

공직생활을 하는동안 경험하고 이어왔던 일들을 하나하나 셀 수는 없지만 그중에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감사함이다.

덕분에 평생 한길을 걸어오면서 겪었던 어려운 고비마다 함께 했던 많은 분들의 응원과 배려로 긴 여정을 마치고 드디어 퇴직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해내고 싶었던 목표를 채우지 못한 아쉬움을 두고 왔지만 최선을 다했던 마음이 진솔하고 진실했다는 자부심 하나로 고마운 분들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려 한다.

내 고향 곡성은 예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눈이 부시게” 마지막 대사처럼 내가 살아올 수 있었던 내 삶의 원동력이었고 새롭게 가야 하는 이 길에서도 원동력이다.

새해를 맞아 고향 곡성의 모든 분들이 ‘오늘이 눈이 부시는 행복함’으로 가득하길 기원해본다.

◇‘눈이 부시게’ 드라마 마지막 대사◇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