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봄, 꺾여 길에 버려진 제라늄 한 가지를 주어 집으로 가져왔다.

페트병에 물을 담아 꽂아 베란다 한구석에 놓고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한 달여나 지났을까 문득 생각이 나서 찾아보니 뿌리가 조금 나온 상태로 물이 다 말라 아사 직전이었다.

미안한 마음으로 다시 물을 가득 채우고 가끔 챙겨보니 생각보다 적응력이 좋아 서 너 달 만에 뿌리가 무성하게 나고 튼실해졌다.

가을이 되어 그동안 잘 살아준 이 아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자그만 화분에 옮겨심고 때맞춰 물을 열심히 주었다.

구사일생에 대한 보답이라도 하듯 봄이 되며 옆으로 가지가 하나 더 나오며 잎도 무성해 지다가 드디어 한 달 전쯤 꽃대가 길게 뻗으며 맨 위쪽에 꽃봉오리들이 올망졸망 맺히기 시작했다.

기대감에 부풀어 화분을 거실 안쪽으로 옮겨 놓고 매일 지켜보니 이 주가 지나면서 화사한 주홍의 꽃들이 앙증맞게 피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작은 꽃봉오리가 여러 개 달려 위쪽에 세 송이가 먼저 피고, 바로 연이어 아래쪽으로 위의 세 송이를 받치는 모습으로 빙 돌아가며 일곱 송이가 피었다. 지금의 모양이다.

그 바로 아래 작은 봉오리 아홉 개가 필 준비를 하고 있다. 길에 버려진채 사라졌을 아이였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자태가 기특하고 예쁘기 그지없다.

혼자 보기 아까워 사진을 찍어 여고 동창 카톡방에 사연과 함께 올렸더니 한 친구가 ‘사랑의 마음’이라고 댓글을 달았다.

‘그래 맞아’ 고개가 끄떡여지며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한 듯 마음이 뿌듯해진다.

예전에 취미활동을 함께 했던 한 분은 집에서 식물 아이 들을 많이 키우는데 다른 사람들이 실패하는 식물도 잘 살리고 그 집의 모든 아이들은 유난히 반짝반짝 싱싱하게 잘 자란다고 하신다.

비결을 여쭈니 수시로 그 식물들과 사랑의 대화를 나눈다고 하셨다.

‘아침에 준 물의 양과 온도는 적당했니? 오늘 날씨는 어땠어? 베란다 창문이 닫혀있어 좀 답답했지? 매연이 심해서 닫았는데 저녁엔 좀 열어 새로운 공기를 맞보게 해 줄게” 등등...

그 때는 내가 젊을 때라 그런가 잘 이해도 안되고 좀 유별나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길에서 주운 가지가 다시 완전한 형태로 자라난 이 아이를 보며 ‘그때 그분의 그 마음이 바로 사랑의 마음이었구나.

사람이나 동물이 아닌 식물들에게도 사랑은 필요한거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많이 회자되는 얘기로, 같은 밥을 두 개의 병에 나란히 담아놓고 한쪽에는 사랑의 말을, 한쪽에는 미워하는 말을 수시로 하면서 몇 일 후에 보면, 사랑의 말을 들은 밥은 별로 상하지 않고 흰밥 그대로 있는데 미워하는 말을 들은 밥은 시커멓게 썩으며 악취를 풍긴다고 한다.

무생물인 밥도 사랑의 말에 달라지는데 하물며 사람이나 동식물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우리 이웃들은 물론, 세상 만물들을 좀 더 따스한 사랑의 마음으로 대한다면 우리의 삶이 훨씬 더 아름다워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