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찾아 삼만리~! 홍희경 |
2025년 03월 14일(금) 1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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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머나 먼 호주에 다시 왔다. 더 이상 혼자 지내실 수 없는 엄마를 양노원에 모셔놓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떠난 지 1년 3개월 만이다.
진작 와서 뵈었어야 했지만 이것저것 할 일이 많은 데다, 엄마의 법적 보호자인 아들과 함께 오느라 일정을 맞추기가 더 어려웠다.
시드니공항 밖으로 나오니 파란 하늘 아래 풍성한 식물과 화려한 꽃들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나를 반긴다.
그러나 빨리 엄마를 뵙고 싶은 마음에 이국적인 풍경을 누릴 여유도 없이 엄마가 계시는 양노원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직원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며 코로나 검사를 하고 들어가니 엄마는 라운지에서 친구들과 차를 드시는 중이었다.
미리 준비를 하셨는지 엷은 화장을 하시고 살구색 스웨터에 같은 톤의 스카프까지, 여전히 깔끔하고 예쁜 모습으로 환하게 웃으신다.
다가가 안아드리는데 새털처럼 가벼운 느낌이 가슴에 짠한 아픔을 불러온다.
문득 처음 양노원으로 가셔야만 할 때, 영어가 잘 안되시는 엄마를 위해, 한국인 어르신들이 많고 직원들도 거의 한국인이며 음식도 한식 위주로 나오는 이곳으로 모시기 위해 노심초사했던 기억이 났다.
한국 어르신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라 내가 찾아갔을 때는 이미 대기자가 꽤 많은 상태였다. 우선 엄마를 대기자 명단에 올리고, 거의 매일 찾아가거나 전화로 간절함을 호소하며 기다린 끝에 운 좋게도 비교적 빨리 모실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엄마는 이곳 생활에 잘 적응하셨다.
규칙적인 생활과 좋은 음식으로 건강이 좋아지심은 물론, 정기적인 물리치료로 집에서 보다 훨씬 잘 걷게 되신 것이 감사했다.
거의 매일 전화로 안부를 묻는 나에게 “여기가 나한테는 딱 맞는 곳이야.
음식도 잘 나오고 친구들도 많고, 무엇보다 직원들과 한국말로 하는 것이 제일 좋아” 하셔서 한시름 놓기도 했다.
우선 한국에서 가져온 양갱 등 간식거리를 내놓으니, 엄마는 우리 큰딸이 가져온 것이라고 자랑하시며 어르신들께 나눠드린다.
잠시 후 깔끔하게 정돈된 엄마 방으로 와서, 제일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여쭈니 밖에 나가 냉면을 드시고 싶단다. 물냉면을 좋아하시는 엄마답다.
다음날 엄마를 휠체어에 모시고 자주 가시던 스트라스필드의 식당으로 가서 냉면과 만두를 사드리고, 쇼핑센터로 가서 이것저것 자잘한 쇼핑을 함께 한 후, 잠시 쉬며 커피도 한잔하니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신다.
이곳에 있는 동안 짧은 기간이지만 매일 휠체어에 엄마를 모시고 동네 산책도 하고 맛난 음식도 먹으며 폭풍 효도를 하였다.
사회복지가 잘 되어 있는 호주는 노인들을 위한 양노원 시스템이 아주 잘 되어 있다.
거주 및 편의 시설은 물론, 직원들의 헌신적인 봉사와 섬김은 가족들에게도 감사와 신뢰감을 준다.
몇 일 후 비록 몸은 멀리 떨어지지만 마음은 늘 함께 한다는 위로의 말로 눈물의 작별을 하고, 엄마의 안녕을 기도하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진작 와서 뵈었어야 했지만 이것저것 할 일이 많은 데다, 엄마의 법적 보호자인 아들과 함께 오느라 일정을 맞추기가 더 어려웠다.
시드니공항 밖으로 나오니 파란 하늘 아래 풍성한 식물과 화려한 꽃들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나를 반긴다.
그러나 빨리 엄마를 뵙고 싶은 마음에 이국적인 풍경을 누릴 여유도 없이 엄마가 계시는 양노원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직원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며 코로나 검사를 하고 들어가니 엄마는 라운지에서 친구들과 차를 드시는 중이었다.
미리 준비를 하셨는지 엷은 화장을 하시고 살구색 스웨터에 같은 톤의 스카프까지, 여전히 깔끔하고 예쁜 모습으로 환하게 웃으신다.
다가가 안아드리는데 새털처럼 가벼운 느낌이 가슴에 짠한 아픔을 불러온다.
문득 처음 양노원으로 가셔야만 할 때, 영어가 잘 안되시는 엄마를 위해, 한국인 어르신들이 많고 직원들도 거의 한국인이며 음식도 한식 위주로 나오는 이곳으로 모시기 위해 노심초사했던 기억이 났다.
한국 어르신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라 내가 찾아갔을 때는 이미 대기자가 꽤 많은 상태였다. 우선 엄마를 대기자 명단에 올리고, 거의 매일 찾아가거나 전화로 간절함을 호소하며 기다린 끝에 운 좋게도 비교적 빨리 모실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엄마는 이곳 생활에 잘 적응하셨다.
규칙적인 생활과 좋은 음식으로 건강이 좋아지심은 물론, 정기적인 물리치료로 집에서 보다 훨씬 잘 걷게 되신 것이 감사했다.
거의 매일 전화로 안부를 묻는 나에게 “여기가 나한테는 딱 맞는 곳이야.
음식도 잘 나오고 친구들도 많고, 무엇보다 직원들과 한국말로 하는 것이 제일 좋아” 하셔서 한시름 놓기도 했다.
우선 한국에서 가져온 양갱 등 간식거리를 내놓으니, 엄마는 우리 큰딸이 가져온 것이라고 자랑하시며 어르신들께 나눠드린다.
잠시 후 깔끔하게 정돈된 엄마 방으로 와서, 제일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여쭈니 밖에 나가 냉면을 드시고 싶단다. 물냉면을 좋아하시는 엄마답다.
다음날 엄마를 휠체어에 모시고 자주 가시던 스트라스필드의 식당으로 가서 냉면과 만두를 사드리고, 쇼핑센터로 가서 이것저것 자잘한 쇼핑을 함께 한 후, 잠시 쉬며 커피도 한잔하니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신다.
이곳에 있는 동안 짧은 기간이지만 매일 휠체어에 엄마를 모시고 동네 산책도 하고 맛난 음식도 먹으며 폭풍 효도를 하였다.
사회복지가 잘 되어 있는 호주는 노인들을 위한 양노원 시스템이 아주 잘 되어 있다.
거주 및 편의 시설은 물론, 직원들의 헌신적인 봉사와 섬김은 가족들에게도 감사와 신뢰감을 준다.
몇 일 후 비록 몸은 멀리 떨어지지만 마음은 늘 함께 한다는 위로의 말로 눈물의 작별을 하고, 엄마의 안녕을 기도하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