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호남 4대 정자 ‘함허정’ 이금노 前곡성군복지실장 |
2023년 02월 14일(화) 2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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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살아 숨쉬는 곡성 입면 제월리 3구 작은 마을인 군촌마을이 있다.
마을 아래는 섬진강(순자강)을 끼고 있는 야트막한 진등산이 있다. 그 진등산 언덕에 전남도지정 유형문화재(제160호) 정자가 있다. "젖을 함(涵)에 빌 허(虛)", 또는 "언덕 허(虛)"자를 쓴 ‘함허정’이다.
함허정에 올라 담 아래 섬진강을 바라보면 '함허정(涵虛亭)이란 뜻 그대로 ‘비어 있는 마음으로 섬진강에 젖는다’ 또는 '섬진강 강빛에 젖는 언덕' 이라는 뜻이 절로 느껴진다.
진등산 함허정에 오르면 저 멀리 무등산이 백리광야에 드러난다. 또한 수백년 된 소나무, 참나무, 대나무 등으로 울창한 숲을 이룬다. 이 숲이 바람을 막아주어 군촌마을을 아늑하게 살피어 주고 있다.
그냥 보아도 금방 풍수지리상 배산임수의 좋은 터임을 짐작할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은 여름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 시원하고, 겨울에는 찬바람을 막아주어 따뜻하다고 한다.
푸른 섬진강물 휘돌아가는 절벽 언덕 위에 소나무, 참나무 숲이 병풍처럼 둘러친 풍류가 흐르는 함허정, 담장 기와의 곡선미가 아름답다. 절벽아래 용소, 쪽빛이 강물의 깊이를 짐작케 한다.
함허정을 한바퀴 둘러보면 한 단의 기단을 놓고 그 위에 정자를 지었다. 기둥은 원형기둥으로 세웠는데, 바르게 다듬지를 않았고 약간 굽은 것도 그대로 기둥으로 세워 자연의 미를 살렸다.
바깥쪽 즉 강쪽의 기둥은 세월의 흔적, 비바람에 씻기고 달아져 기둥 자체가 벌어지고 갈라져 있다. 정자 처마 곳곳에는 여러 편액들이 못이 박힌체 걸려있다. 수많은 사람들과 교류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500년 전 당시와 그 후대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함허정에 올라 섬진강을 노래하고 풍류를 즐겼다는 것을 함허정에 걸린 편액들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함허정은 조선시대에는 호남의 4대 정자였고, 지금도 광주전남 8대 정자로 일컬어지고 있다.
'함허정' 현판 글씨는 추사 김정희, 눌진 조광진과 더불어 조선 후기 3대 명필로 일컬어지는 창암 이상만의 작품이라고 한다. 현재 함허정에 걸려 있는 현판은 모조품이고, 진품은 아니라고 한다.
역사는 흔히들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고 말한다. 우리의 역사는 결국 조상들이 살아온 발자취다. 우리 지역에도 이러한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이 있고 이러한 흔적들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과 미래의 생각을 낳게 한다.
마을 아래는 섬진강(순자강)을 끼고 있는 야트막한 진등산이 있다. 그 진등산 언덕에 전남도지정 유형문화재(제160호) 정자가 있다. "젖을 함(涵)에 빌 허(虛)", 또는 "언덕 허(虛)"자를 쓴 ‘함허정’이다.
함허정에 올라 담 아래 섬진강을 바라보면 '함허정(涵虛亭)이란 뜻 그대로 ‘비어 있는 마음으로 섬진강에 젖는다’ 또는 '섬진강 강빛에 젖는 언덕' 이라는 뜻이 절로 느껴진다.
진등산 함허정에 오르면 저 멀리 무등산이 백리광야에 드러난다. 또한 수백년 된 소나무, 참나무, 대나무 등으로 울창한 숲을 이룬다. 이 숲이 바람을 막아주어 군촌마을을 아늑하게 살피어 주고 있다.
그냥 보아도 금방 풍수지리상 배산임수의 좋은 터임을 짐작할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은 여름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 시원하고, 겨울에는 찬바람을 막아주어 따뜻하다고 한다.
푸른 섬진강물 휘돌아가는 절벽 언덕 위에 소나무, 참나무 숲이 병풍처럼 둘러친 풍류가 흐르는 함허정, 담장 기와의 곡선미가 아름답다. 절벽아래 용소, 쪽빛이 강물의 깊이를 짐작케 한다.
함허정을 한바퀴 둘러보면 한 단의 기단을 놓고 그 위에 정자를 지었다. 기둥은 원형기둥으로 세웠는데, 바르게 다듬지를 않았고 약간 굽은 것도 그대로 기둥으로 세워 자연의 미를 살렸다.
바깥쪽 즉 강쪽의 기둥은 세월의 흔적, 비바람에 씻기고 달아져 기둥 자체가 벌어지고 갈라져 있다. 정자 처마 곳곳에는 여러 편액들이 못이 박힌체 걸려있다. 수많은 사람들과 교류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500년 전 당시와 그 후대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함허정에 올라 섬진강을 노래하고 풍류를 즐겼다는 것을 함허정에 걸린 편액들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함허정은 조선시대에는 호남의 4대 정자였고, 지금도 광주전남 8대 정자로 일컬어지고 있다.
'함허정' 현판 글씨는 추사 김정희, 눌진 조광진과 더불어 조선 후기 3대 명필로 일컬어지는 창암 이상만의 작품이라고 한다. 현재 함허정에 걸려 있는 현판은 모조품이고, 진품은 아니라고 한다.
역사는 흔히들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고 말한다. 우리의 역사는 결국 조상들이 살아온 발자취다. 우리 지역에도 이러한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이 있고 이러한 흔적들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과 미래의 생각을 낳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