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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22(수) 14:13
“부정선거 항의 그날의 함성…지금도 생생합니다”

고향에서 여생 보내는 4·19혁명 주역 최진석씨

국회의사당·경무대 돌며 눈물의 태극기 시위
데모 대열 선두서 최루탄 맞아 한쪽 눈 장애
국가유공신청에 ‘응답 너무늦어’ 답답함 표시

김래성 기자
2022년 04월 05일(화) 21:22
아! 四·一九여! 나의 靑春 나의 젊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靈魂이여!
民主主義를 위한 젊음의 肉体의 獻身이여! 참으로 장한 일이로다. 영원한 民主主義의 先鋒者여!

“‘3·15 부정선거는 무효다. 재선거를 실시해야 한다’며 서울 하늘을 향해 목이 터져라 민주주의를 외쳤던 그날의 함성이 지금도생생합니다.”

4·19 당시태극기를 들고 데모 대열 선두에서 동료들과 함께 시위대를 이끌었던 최진석씨(81·곡성군 곡성읍 교촌리 출생·인물사진).

4·19가 일어난지 60년이 훌쩍 지났고 여생을 위해 10년 전 고향 곡성에내려와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4월만 되면 마음 한켠에 만감이 교차한다.

불의에 항거하고 국가가 올바른 길을 가야 한다는 신념에 찬 젊은시절 험하게 겪었던 4·19혁명 그때 상황으로 자연스럽게 시간이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당시 건국대 법학과 2학년이었던 최씨는 태평로 국회의사당 앞에서 한손엔 ‘이승만 물러가라’는 프래카드를 거머쥐고 또 한손에는 태극기를 들고 자유 민주주의 수호를 외쳤다.

경무대와 내무부 등을 찾아 부정선거 항의시위를 주도했던최씨는 당시 현장을 생생히 보도한 중앙일간지 기사를 보며 국민의 피끓는 그날의 함성을 되새겼다.

시위가 한창이던 그 시각. 경무대 첫 발포를 시작으로 경찰은 무차별적으로 시위를 진압했다. 이 때문에 시위현장에선 부상자들이 속출했고, 병원마다 입원환자들로북적됐다. 이를 지켜본 국민들은 부상자 치료를 위해 헌혈을 자처하는 등 온 국민이 뜻을 함께 했다.

그런데 최씨는 그 무렵 시위진압을 하던 경찰의 최루탄과물대포를 맞아 부상을 입고 치료를 했으나 결국 시력을 되찾지 못한 채 시각장애 6급 장애판정을 받고 평생을 고초를 겪고 있다.

4·19혁명은 1960년 3월 15일 대한민국 제1공화국인 제4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 자유당 정권이 금품을 살포해 민심을 왜곡하면서 정치깡패를 동원해 투표장에 온 시민들을 위협하고, 야당 참관인들을 폭력으로 쫓아내는 역사상 최악의 부정선거를 저지르자,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는 학생들의 시위에서 비롯됐다.

특히 부정선거 규탄 시위 도중 경남마산에서 경찰의 집단 발포로 김주열 열사를 포함해 9명이 사망하고 80여 명이 부상하는 참극이 벌어지자 이승만 정권 규탄 시위가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나 4·19혁명의 불씨가 됐다. 시민들과학생들은 무자비한 시위진압에 맞서 싸웠고 결국 그해 4월 26일 이승만이 대통령 하야를 발표하고 자유당정권이 몰락한 뒤 우여곡절 끝에 제2공화국이 출범했다.

역사의 뒤안길에서 10년전 곡성으로 낙향한최씨는 정촌민박을 운영하면서 생활하던 중 2021년 정부가 4·19혁명 당시 주도적 활동사실이 있는 참여자들에게 추가 포상을 위한 공모에 나서자 공적심사자료를 국가보훈처에 접수했다. 그러나 언론이 보도한 당시의 사진 등명백히 밝혀진 입증자료에도 불구하고 승인결과를받지 못해 착잡하고 한편으로 답답한 마음이다.

불의에 항거하고 나라와 사회를 위해 온 몸을 바친다는 각오로 4·19와 함께 했던 최진석씨는 “고향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어 여한이 없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마지막 명예회복과 자긍심이 심어지도록 국가는 유공자들의 마음을 하루빨리 헤아려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1941년 곡성읍 교촌리에서 태어난 최씨는 곡성중앙초, 곡성중(5회), 곡성고를 졸업한 뒤 건국대를 거쳐 1963년 동국대를 졸업했다. 이후 부산시청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3년여간 공직에 몸을 담았으나, 뜻을 바꿔 수출용 박스 생산업체인 도림수출포장회사를 차려 23년간 운영했으며, 진양화학 부산사무소장을 역임했다. 애향심도 강해 재부산곡성군향우회장을 오랫동안 지내오다 2013년 곡성에 내려와 고향생활을 시작했다.

가족으로는 교사출신인 부인과 1남 2녀를 두고 있으며 아들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뒤 신용보증기금 간부로, 부부교사인 첫째딸과 사위는 미국거주, 셋째딸은 사위와 함께 정보통신사업을하고 있다.
김래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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