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향우회 모임에 참석한지는 7~8년이 되었지만 좀처럼 하루종일 시간을 내지 못해 심청축제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기대와 설레임으로 차 안에 올라 비가 조금씩은 내렸지만 수월하게 곡성읍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고 나는 개막식 행사가 열리기 전까지 어릴적 지냈던 입면을 둘러보기로 했다. 남원쪽 청계동 방면으로 가면 가장 빠르다는 친절한 택시 기사님 안내에 맞춰 서서히 이동했는데 정말 눈깜빡할 사이에 그렇게도 마음에 그리던 고향집에 도착했다.
내가 태어나 중학년 2학년 1학기까지 살았던 집.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고 앙상한 지붕과 마당에 무성한 잡초만이 가득 메워져 있었고 대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까치발을 딛고 마당과 뒤뜰을 기웃거려 보았다. 순간 어릴적 감회 때문인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오십여년을 마음에 두고 그리워했던 고향집. 그리고 내 삶의 시간들. 긴 인생의 시간동안 15년은 짧은 시간이지만 추억은 길고 진하게 남아 있었다. 내가 어렸을 적에 자주 놀러갔던 아랫집에도 가 보았다. 마당 입구에 있던 우물은 메워지고 지금은 수도꼭지가 놓여 있었고 마을 끝에서 눈을 들어 늘 누군가를 기다리며 간간히 지나가는 버스를 보았던 그 언덕도 그대로 있었다. 어렴풋이 집에 있던 자리에 가서 이제는 기억도 못하시는 94세 할머니를 보았다. 나는 그분들이 누구인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당숙모’하고 부르자 반갑게 맞이하기는 했지만 이내 기억이 나시지 않는 모양이다. 겨우 아버지 성함을 대고서야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내가 다녔던 그 당시 국민학교로 달렸다. 학교 또한 황량하기 그지 없었다. 소중한 꿈을 갖고 교육에 열망을 가지게 하였던 그 시절, 그 곳, 사람들…
마침 구석구석 동네 환경을 잘 알고 있는 택시기사 덕분에 내가 궁금한 일에 대해 친절한 안내를 받을 수 있어서 매우 고마웠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중학교는 통합되어 입면초등학교로 변해 있었고, 학교 앞 창정마을에 있었던 초등학교엔 생물방제센터가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학교를 둘러보고 소풍을 자주갔던 종방 섬진강을 가 보았다. 물이 넘치고 하얀 자갈과 모래가 가득했던 옛 섬진강은 온데간데 없고 간헐천같이 말라 있었다. 마음이 아팠다. 가물기도 했겠지만 모래를 많이 채취해서 이렇게 되었노라고 택시기사분이 말씀해 주셨다. 고향의 아픈 속살까지 얼추 보고 행사장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들판에 일하시는 분들은 적지만 한 공간도 놀리지 않고 정성스럽게 농사를 지으신 어르신들이 정말로 대단하게 느껴졌다.
여전히 행사장엔 비가 내렸지만 열기는 뜨거웠다.
내외빈 소개가 끝나고 군수님의 말씀중에 곡성 토란 이야기가 내 마음에 꽂혔다. 암에 걸리지 않는 마을에서 평생 토란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목청껏 말씀하시는데 이렇게 좋은 이 이야기는 행사장에 나와 계시는 분들은 다 안다. 아직 이렇게 좋은 먹거리와 살기좋은 고향에 살아야겠다는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이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개개인마다 고향을 찾는 이유가 있지만 공통점은 곡성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이런 귀한 행사에 처음 참석했다. 비가 오는데도 불원천리 달려온 우리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신 군수님과 군민들게 무한한 감사가 느껴졌고, 특히 창간된 곡성일보를 보며 고향소식을 아는 것 그리고 관심갖는 것, 곡성 농산물을 한 봉지라도 사는 것 등등 고향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길이 많음을 느꼈다.
이제부터라도 작은 것 부터 시작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곡성에서 돌아와 며칠간 마음속에 그 곳 풍경, 구수한 말들과 왁자지껄 했던 심청축제가 남아있다. 공간의 한계가 문제되지 않는 고향사랑법을 가슴깊이 새겨본다.

곡성일보 admin@gs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