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책 읽기에 푹 빠져 대하소설 「사랑과 혁명」 3권을 온몸으로 읽었다. 이 소설은 몇년 전 곡성의 미실란으로 집필실을 옮기고 글쓰기 이외에 농사를 배우며, 우리 고장을 위한 다양한 문화활동을 하고 있는 김탁환 작가의 작품이다.

1827년 봄, 곡성에서 일어난 정해박해를 중심으로 그 시대 천주교인들의 신앙생활과 치열한 삶 속에서, 조선의 천주교인들이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과 희생을 하였는지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쓴 글이다.

특히 그 당시의 천주교인들이 혹독한 고문을 받으며 구속되었던 옥터 성지가 있는 곡성성당의 신자인 나는 그들의 끝없는 헌신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이야기학교에서 자주 말씀하시던 장선리 들과 습지, 그곳의 버드나무들, 집필실 앞의 산수유나무인 ‘벌써‘와 배롱나무 ‘아직도’가 등장하고, 천덕산, 동악산, 동이산, 순자강, 대황강, 장선마을, 목사동, 압록진, 태안사 등 지금도 우리가 늘 보고 듣는 익숙한 지명들이 소설 속에 녹아있어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소설을 읽는 내내 등장인물들이 지나는 그 길들을 따라 걷기도 하고 함께 험한 산길을 오르내리기도 하였다.

지금은 자취도 찾을 수 없는 당고개 주막은 어디쯤일까 그 근처를 가늠해 보기도 하며, 곡성을 배경으로 하는 이런 훌륭한 작품이 탄생한 사실에 마음 저 깊은 곳에서 굵고 힘있게 올라오는 벅찬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동안은 영화 곡성(哭聲)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곡성을 잘못 인식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서울의 지인들도 내가 제2의 고향으로 자리 잡은 곳이 곡성이라고 하면 열에 아홉 사람은 영화를 떠올렸다.

좋지 않은 상상과 함께 그 곡성이냐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짓곤 했다.

워낙 서울에서 멀고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군 소재지인 상황에서 영화가 사람들한테 강하게 각인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심지어 관광 온 사람들중 일부는 영화를 떠올리며 무섭고 섬뜩하다고 버스에서 내리지도 않았다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말을 듣기도 했다.

작년 봄, 처음 이곳을 찾았다는 남편의 군대동기인 한 부부도 오는 내내 영화 곡성을 떠올리며 괴기스러운 상상을 했는데, 막상 와보니 세상 이렇게 평화롭고 아늑하게 좋은 곳이 또 있을까 하며 좋아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씁쓸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곡성이 아니고 골짜기 谷에 성城자를 쓰는 곡성이라고, 각 마을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로운지 모른다고, 필요 이상으로 힘주어 말하곤 했는데 이젠 전혀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그냥 여유롭고 편안하게, 조금은 뽐내기도 하면서 「사랑과 혁명」의 주 무대인 곡성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일만 남았다. 이젠 영화 곡성이 아닌 「사랑과 혁명」의 곡성으로, 새롭게 널리 거듭날 것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사랑과 혁명」 화이팅, 곡성 화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