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뒤편에 무화과나무가 두 그루 있다. 봄이 지나자 언제 꽃이 피었나 싶게 줄기 가득 열매가 무성했다. 그런데 매일 가 봐도 크기는 고만고만하고 익을 줄을 몰랐다. 기다림도 지쳐갈 무렵 단내가 풍겨왔다. 드디어 고만고만한 열매들 속에서 우듬지 쪽 무화과가 붉게 익어가고 있었다. 첫 열매에는 벌써 손님이 와서 한 무리의 호박벌과 개미가 작은 입으로 어찌나 맛있게 먹는지 쫓지를 못하였다. 익어가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무화과는 직원들에게도 맛을 보여주었고 여름날 나의 달콤한 휴식처가 되었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무화과 익는 속도는 느려졌고, 어느 날 이파리가 꼬실라졌다. 서리가 내린 것이다. 안타깝게도 작은 열매들은 익어보지도 못하고 말라갔다. 한때 나무였고 잎이었고 열매였다 해도 가을에는 그저 견딜 뿐이었다.
지난 일요일 8시 카톡이 왔다. “운동할까?” 혹시 다른 약속 잡을까봐 얼른 “좋아, 9시에 보게” 답장을 보낸다. 올해 쉰다섯인 언니는 작년에 아들이 예약해준 건강검진에서 폐암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초기여서 수술로 치료를 끝냈지만 처음에는 작은 언덕만 올라도 숨이 차다고 했다. 매일 운동하고 먹거리도 챙기고 꾸준히 치료를 받아서 지금은 산도 힘들지 않게 오른다. 엊그제는 아들 결혼도 시켰다. 자녀를 결혼시키고 손주를 보는 것들이 누군가는 간절히 원했던 내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감사하게 산다고 헸다. 언니는 나와 암 요양병원 병실 동기이다. 갑상선암 수술을 받고 입원했던 병원에서 언니를 처음 보았다. 병실에는 사십대 초반으로 위암 치료를 받고 있는 여성이 있었다. 속이 쓰려서 병원에 갔는데 급성으로 진행하는 위암 말기라고 해서 수술도 못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한 숟가락의 밥을 먹기 위해서 한 시간 넘게 배를 쓰다듬던, 남들 밥 먹는 모습마저 부럽다던 여린 눈망울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20만 명 이상의 암 환자가 새로이 발생하고, 7만 명 이상의 사람이 암으로 인해 목숨을 잃고 있다. 성별로 보면, 우리나라 국민 중 남자는 5명 중 2명, 여자는 3명 중 1명꼴로 암이 발생하여 궁극적으로는 4명 중 1명이 암으로 사망한다고 볼 수 있다. 암 진단 및 치료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암 발생 및 사망은 증가할 것으로 추정되며, 국립암센터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앞으로 10년 이후에는 암 발생자 수가 지금보다 46% 증가되고 암 사망자 수도 30% 증가된다고 한다.
암종별 생존율은 각각 다르지만 모든 암에서 조기에 진단받고 치료하는 경우 높은 생존율을 보이는 반면에, 암이 진행된 후 진단될수록 생존율이 급격히 낮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암의 치료와 암으로 인한 사망을 막기 위해서는 조기 진단이 중요하다.
국립암센터는 검진효과와 위해에 대한 연구를 통해 2015년 7대 암(위암, 대장암, 간암, 유방암, 자궁경부암, 갑상선암, 폐암) 검진 권고안을 발표했다.
위암은 40세에서 74세까지는 2년마다 위내시경을 통해, 대장암은 45세에서 80세까지는 1~2년마다 대변검사를 통해, 간암은 B형 또는 C형 간염바이러스 보유자는 40세부터, 간경화증은 진단시점부터 6개월마다 정기적으로 간 초음파와 혈액검사를 받도록 권고하고 있다.
또한 폐암은 55세에서 74세까지 하루 1갑씩 30년 이상 흡연자는 1년마다 저선량 흉부CT를, 유방암은 40세부터 69세까지 여성이라면 2년마다 유방촬영검사를, 자궁경부암은 20세에서 74세 이상이라면 3년마다 자궁경부세포검사를 권고하였다.
갑상선암은 가장 발생률이 높으나 완치율도 높아서 일상적으로 검진을 권고하지는 않으며 혹이 만져지거나 가족력 등 필요할 때 의사와 상담 후 검진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 연령대가 아닌 경우는 의사와 상담을 통해 검진을 받을 수 있으며, 자세한 정보는 국가암정보센터(www.cancer.go.kr 1577-8899) 홈페이지에서 만날 수 있다.
암 진단을 받은 사람은 일반인보다 먼저 죽음과 남아있는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진다. 아버지가 간암을 앓으셔서 언젠가는 암에 걸릴 수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막상 건강검진에서 갑상선암 진단을 받으니 믿겨지지가 않았다. 오진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대학병원으로, 서울로 가게 했다. 암을 확정 받고도 수술에 대한 논란이 심하던 때라 수술을 결정하기까지 3개월이 걸렸다. 다행히 다른 장기로 전이되지 않아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 없이 수술로 치료가 끝나기는 했지만 5년간 재발여부를 지켜봐야한다. 이제 아침이면 일어나자마자 약을 챙겨먹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요즘은 “같이 운동하자”, “밥 먹자”는 말이 무척 반갑다. “언제 한번 보자”는 뜬구름 같은 약속보다는 날짜를 정해 만나거나 직접 전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수다를 떨며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햇빛을 받으며 마을길을 걷고 냇가에 청둥오리가 물속을 뒤지다가 깃털을 터는 모습을 보는 것......
고마운 일이다. 잃어버릴 수도 있었던 순간들이기에 더욱 고맙다.
세 끼 밥을 챙겨먹는 것처럼 정기적으로 암 검진을 받는다면, 암을 조기에 발견하여 치료한다면 소중한 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들을 늘릴 수 있다.

곡성일보 ok-kr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