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봄비가 내린다. 비바람에 벚꽃도 다 지고 들녘은 한 해를 준비하는데 분주하다. 아버지는 논에서 볍씨를, 어머니는 밭에서 고추를 심으신다고 밭을 일구는 모습이 영화 필름처럼 떠오른다. 봄비 탓일까. 어렸을 적 추억 탓일까. 평소 술을 좋아하는 나는 진(晉) 나라 완수(阮修)를 그려본다.

그는 항상 외출할 때면 언제나 지팡이 끝에다 백 냥씩을 걸고 나가서 주점(酒店)에 이르러 혼자 술을 즐기며 마셨다. 여기에서 장두백전(杖頭百錢)의 고사가 유래한다.(출처:《진서 권49(晉書卷之四九)》)

집은 가난하나 장두백전은 떨어지지 않아 /家貪不乏杖頭錢
해질녘 주막을 찾아 버들연무를 차지하네 /覓酒斜陽點柳烟
주막 늙은이 응당 나를 아는 사람 /店叟亦應知我者
산 아래 이웃으로 여러 해 살았지 /卜隣山下已多年
(출처: 《둔인수록권3
(鈍人隨錄卷之三)》)

위 시는 김진휴(金震休)의 《둔인수록》권3에 실려 있는 시이다. 나그네는 아직 술값이 남아 버드나무 아래 자리 잡은 주막을 들어선다. 때는 삼복쯤 될까. 버드나무는 잎이 무성하여 연무를 이루고 있으니… 나그네는 막걸리 한사발로 더위를 식히려 주막을 찾았나보다. 주막집 주인을 부르자 산 아래에서 여러 해 이웃하던 어른이 반겨준다. 이하 한시의 감상은 독자에 몫으로 남겨 놓는다.

다가오는 오월은 윤석열 당선인의 새 정부가 출범한다. 2년여의 코로나19 예방지침도 자유로워진다. 아니 무엇보다 고향에서는 한해의 농사가 시작된다. 논에는 벼를, 밭에는 고추와 감자를 심고 놓아야 한다. 진나라 완수의 장두백전을 들고 이번 주말은 고향을 찾아 부모님을 뵈어야겠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부모님 일손도 돕고 삼겹살에 시원한 막걸리도 사 드리고, 그동안 못한 효도한다고 하면 부모님은 철 들었다고 웃으시려나.

엄 찬 영문학박사본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