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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22(수) 14:13
갈메의 계절

홍희경 본보 명예기자
前서울시교육청 도서관장

2023년 11월 07일(화) 19:49
어느덧 가을의 한가운데로 깊숙이 들어왔다. 바야흐로 만추의 계절이다. 온 산이 울긋불긋 화려한 단풍으로 가득한 이때쯤이면 늘 내 마음을 사로잡는 나무들이 있다.

40년도 훨씬 더 전, 어느 봄날 결혼 후 처음 오는 곡성의 초입에서 낯설어 하는 나를 환영해 주는 듯 긴 삼각형의 일률적인 모습으로 연초록의 잎을 살랑거리는 이나무들을 처음 만났다.

그때는 처음 보는 모습이 아름답고 신기했을 뿐 이나무들의 출신도 이름도 알 수 없었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히말라야 깊은 눈 속에 있는 홀씨를 발견해 처음으로 발아에 성공한 일본사람의 이름을 따 ‘메타세콰이어’라 지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름이 특이해서인지 발음이 어렵고 길었음에도 단 한번에 선명히 기억되었다. 그 이후로 1년에 두세 번씩 이곳을 찾을 때마다 이 나무들을 만나는 나만의 즐거움이 있었다.

봄에는 연초록이었다 여름이 짙어지면 진초록, 가을이 깊어갈수록 노란색에서 황금색으로, 다음엔 갈색으로 잎이 물드는데, 그 갈색이 어찌나 다양하면서도 깊고 오묘한지 어떤 물감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듯하다.

또 겨울에 잎을 다 떨구고 굵은 줄기와 작은 가지만 홀가분하게 남아 있는 그 모습도 참 맘에 들었다. 계절마다 다른 모습이 다 좋지만 가장 맘에 드는 때는 가을의 그 깊고 오묘한 갈색 잎을 달고 있을 때이다.

엷고 부드러운 황갈색에서 짙고 어두운 갈색, 붉은 기가 살짝 도는 갈색도 있는데, 저녁노을이라도 살짝 닿으면 황금빛이 가미된 우아하고 부티가 나는 갈색으로 변하는 그모습이 아주 매력적이다.

그래서 가을의 메타세콰이어를 줄인 ‘갈메’라고 내 마음속의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나무의 모습을 자세히 보면 봄에 새잎이 나올 때는 어찌나 연하고 연한지 보들보들 가느다란 잎들이 서로서로 마주 보며 차례를 잘 지키는 모범생처럼 나란하다.

계절이 깊어질수록 잎에 조금씩 힘이 생기며 굵어지다가 겨울이 다가와 잎을 떨굴 때가 되면 제법 단단한 모습을 갖추게 된다.

나무 몸통도 얼핏 보면 다른 나무들처럼 밋밋한 원통 같지만 자세히 보면 작은 나무들이 하나하나 힘을 합해 큰 몸통을 만든 것처럼 동글동글하다.

그 작은 원통들이 서로 꼭 안은 채 위로 죽 올라가서 다시 자신만의 가지로 나누어지고, 아래쪽도 겉에선 보이진 않지만 땅속에서 각각 뻗어서 서로 균형을 맞추는 듯하다.

이 나무가 안정되게 땅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위로 높이 자라 큰 키를 자랑할 수 있는 것이 그 작은 원통들 덕분이라고 생각된다.

가까이 가면 아주 기분 좋은 향이 난다. 향나무와 비슷한 것 같은데 그보다 자극적이지 않은, 연하면서도 부드러운 향이다.

점점 깊어지는 가을, 다시 한 번 이 향기에 흠뻑 취하며 잠시 나만의 여유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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