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아가, 개치대에 비 묻어온다. 비설거지 해야 쓰겄다.” 할머니는 “아야, 개치대가 시커매진다. 빨래 걷어야 쓸랑갑다.” 아버지는 “개치대가 훤해진다. 날이 갤랑갑다.” 어머니도 “빠스가 개치대쪽으로 번개같이 도망간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자주 들었던 ‘괴티재’ 얘기다. 집안 어른들이 ‘괴티재’를 두고 주로 ‘개치대’로 마구 불렀다. 나는 그때부터 ‘개치대’가 진짜 이름인 줄 알았다.

‘괴티재’의 정확한 이름을 아는 사람은 지금도 많지 않으리라. 원래 이름 자체가 부르기 힘들다 보니 비슷하게만 부르면 그냥 알아듣고 적당히 넘긴 것이다.

그러나 어쩌다가 한번 듣고 마는 타지의 지명이 아니라 바로 눈앞에 두고 늘 함께 불러야 할 지명이기에 그 정확한 이름만이라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여기에 사족을 달아본다.

‘한국지명유래집 전라.제주편 지명’에 이렇게 나와 있다.

「전라남도 곡성군의 곡성읍 서계리에서 삼기면 괴소리를 이어주는 고개이다. 곡성의 진산인 동악산은 봉황이 날아가는 형세이다.

봉황은 고양이를 꺼리는 성질이 있어서 풍수적으로 봉황이 곡성에서 다른 지역으로 날아가지 못하도록 고개를 ‘묘치(描峙)’ 우리말로 ‘괴티재’라고 불렀다.

‘괴’는 고양이의 옛말이고‘티’는 터의 사투리이다. 즉 ‘괴티’는 고양이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이다.‘호남읍지’에는 ‘묘현’으로 표기되었다.

‘대동여지도’에는 통명산과 구봉산으로 이어지는 산록에 있는 고개로 곡성현과 석곡면을 연결하는 고개였다고 묘사하고 있다.」라고 적혀있다.

이제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던 ‘개치대’가 아니고 ’괴티재‘인 것을 확실히 알았기에 이를 지역민들에게 널리 알려 바로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울러 점점 사라져가는 정다운 우리 지명을 자주 써서 잃어버린 낭만을 되찾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다소 동떨어진 얘기일지 몰라도 내가 기억하는 잃어버린 낭만에 대하여 좀 더 얘기했으면 한다.

내가 어렸을 적엔 시내 동쪽 끝에서 시내 쪽과 남원 쪽, 구례 쪽, 그리고 고달 쪽으로 갈라지는 사거리를 「낙동원사거리」라고 불렀다. 지금은 없지만 그 사거리에 「낙동원」이라는 음식점이 터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시내 서쪽 끝에서 광주로, 군청으로, 터미널로 내려가는 사거리를 「북경원사거리」라고 불렀다. 역시 그 사거리에 「북경원」이라는 중국집이 터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먹지 못해 배만 불룩해진 그 배고픈 시절 「낙동원」과 「북경원이」 오가는 사람들의 코를 얼마나 자극했는지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나 역시 서편네(읍내7구)에서 살고 있었기에 초등학교 등·하교 길에 그 앞을 지나칠 때마다 코를 진동하는 짜장면 냄새에 얼마나 많은 침을 흘렸는지 모른다.

구, 중앙초등학교 교문 앞, 길 건너편에 「신순관」이라는 중국음식점이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점심시간만 되면 우리 담임이셨던 「이준기」 선생님과 친한 선생님 한 분이 우리 교실로 와서 주로 짜장면을 시켜 먹었는데 그 냄새 때문에 모두 코를 싸매기 일쑤였다.

그때 도시락도 못 싸 온 친구들도 있었고 나처럼 고구마만 싸 온 친구들도 있었는데 그땐 그 선생님이 참으로 야속했다.

어렸을 때 못 가본 그 「신순관」을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자주 이용하였는데 안타깝게도 얼마 전 코로나가 유행할 때 영업을 중단하더니 그 뒤로 영영 문을 닫고 말았다.

백년 가까이 한자리를 지켜온 「신순관」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으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옛날 「중앙극장」은 건물만 리모델링돼서 그랑프리 모텔로 바뀌어 남아 있고 「곡성극장」은 그때 그 자리에 옛 모습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 있어 그 옛날 낭만의 향기를 다소나마 간직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나의 모교인 「곡성중앙국민(초등)학교」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 버려서 아쉽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그 터는 그대로 남아 문화센터로 활용되고 있어 그나마 큰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기특하면서도 자랑스러운 것이 딱 하나 있다. 곡성읍내 매일시장 입구 쪽에 있는 「만물코너」가 바로 그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백년 동안 곡성 시가지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가게이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모두 퇴깽이(토끼의 사투리)점빵이라고 불렀다.

후대에서 그 소리를 달갑지 않게 여겼겠지만, 그 내막을 알면 그렇게 나쁜 의미가 아니다.

오래전에 고인이 되었지만, 초창기 사탕가게를 차렸을 때 주인 이름이 「김태경」이었는데 가게가 워낙 유명해진 바람에 애칭으로 성을 빼고 「태경이 점방」이라고 부르다가 토끼의 사투리인 「퇴깽이」와 발음이 비슷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변한 것이다.

사실 그 바람에 더 유명해졌고 그만큼 장사도 잘 되고 본인도 농담으로 웃어넘겼으니 그렇게 속상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만물코너」, 어쨌든 곡성에서 제일 오래된 가게이니만큼 커다란 긍지와 자부심으로 오래오래 이어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더불어 지금까지 지켜오신 「만물코너」 사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아울러 자치단체에서도 지역문화제에 준하는 대접을 해준다면 참 좋겠다.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옛것이 그립고 더 좋아 보인다. 그리고 그때가 낭만 시대였던 것 같다. 따라서 옛것을 쉽게 잊고 버리는 지금의 세태가 무척 안타깝다.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란 노래로 마무리한다.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