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구원리 출신의 예술가 김백기 감독은, 전국 예술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2000년 3월 서울 홍대 앞에서 순수예술단체 한국실험예술정신(KoPAS, 이하 코파스)을 결성했다.

코파스는 당시 실험예술의 교두보 역할을 하며, 2002년 8월 ‘한국퍼포먼스 30년’을 주제로 제1회 한국실험예술제(KEAF)를 개최, 본격적인 예술제의 태동을 알렸다.

한국의 퍼포먼스아트는 1960년대 후반, 미술사적 ‘해프닝’을 통해 시작되었고, 70년대에는 개념미술의 논리성, 80년대에는 즉흥성과 현장성이 강조되며 '행위미술'에서 '행위예술'로 이어졌다.

이후 90년대에는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들이 이어지며 ‘퍼포먼스아트’, ‘미디어아트’, ‘실험예술’ 등으로 확장되어 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실험예술제는 2002년부터 2013년까지 홍대 앞을 중심으로 개최되며 한국 실험예술의 대중화와 국제화를 이끄는 중심축이 되었다.

특히 이승택, 이건용, 성능경, 김구림, 정강자 등 한국 행위미술의 거장들이 직접 참여해 축제의 예술적 깊이를 더했으며, 이후 ‘한국 퍼포먼스 아트 30년’에 이어 40주년 기념행사, 제주현대미술관과 공동 기획한 50주년 전시까지 주관하며 그 역사성을 공고히 했다.

2014년에는 도시를 떠나 활동 무대를 제주로 옮기며, 자연과 생태에 주목한 ‘제주국제실험예술제(JIEAF)’를 선보였다.

이어 2021년, 김백기 예술감독은 고향 곡성의 예술적 가능성을 타진하며, ‘강’과 함께 흐르는 아트 웨이브, ‘섬진강국제실험예술제(SIEAF)’를 새롭게 열기 시작했다.

섬진강과 대황강, 곡성의 숲과 농업문화는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실험의 영감을 제공했고, 예술제는 환경·지역·예술의 새로운 화두를 실천하는 장이 되었다.

예산과 인력의 제약 속에서도 SIEAF는 23년간 꾸준히 축제를 이어오며 방대한 창작과 기록의 성과를 남겼다.

특히 KoPAS가 보유한 퍼포먼스 관련 미디어 아카이브는 국내 최대 규모로, 한국 실험예술사뿐 아니라 공연예술로서의 K컬처의 현장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산이다.

인공지능이 국가 전략의 중심이 된 지금, 이러한 예술 데이터베이스는 AI 시대의 문화적 기반으로서 더 큰 가치와 역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무안백련축제_작품명 '강'_연출 김백기_2004

국내 예술사에서 ‘섬진강국제실험예술제’가 갖는 위상은 독보적라 할 수 있다.

특히 국내 타지역 축제들이 대체로 유사한 형식과 내용으로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곡성에서 펼쳐지는 이 국제 실험예술제는 그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글로컬(glocal)’ 농촌 문화예술 축제로서 그 차별성과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단지 지역 축제를 넘어, 예술이 지역의 철학적·생태적·사회적 의미와 깊이 만나며, 세계 각국 예술인들과 만나는 특별한 장으로서 지역을 활성화시킨다는 점에서 매우 희망적인 것이다.

온몸을 흐르는 대동맥의 거대한 순환과 같이, 대지를 따라 흐르는 생명의 원천인 ‘강’과 같이, ‘섬진강국제실험예술제(SIEAF)’는 곡성의 농업과 생태를 기반으로 강이 함축하고 있는 철학적, 생태적, 예술적 의미와 가치를 찾아가는 예술여정을 2025년에도 힘차게 나아간다.

이번 연재가 농촌의 미래에 또 하나의 가치를 담는 순간으로 기록되기를 소망한다.